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만주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전역에서 행정 조직이 가장 잘 정비되어 있던 민정기관(民政機關)이었으며, 1919년 3월 13일 용정(龍井)에서 개최되었던조선독립축하회(朝鮮獨立祝賀會)에서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가 결성되면서 발족되었다. 대한국민회는 본부를 연길현(延吉縣) 하마탕(蛤蟆塘)에 두고 그 밑에 동,서,남,북 등 8개의 지방회(地方會)와 130여개의 지회를 설치하였으며, 군자금 모집과 교민사회의 안정 및 독립군 양성에 주력하였다.
회장은 창립 이후 오랜 동안 구춘선(具春善)이 연임하였다. 국민회군은 대한국민회의 직할부대로 조직되었는데 간부진으로는 사령관 안무(安武), 부관 최익룡(崔翊龍), 중대장 조권식(曺權植), 암병극(林炳極), 향관(餉官) 김석두(金碩斗), 허동규(許東奎) 등이 활동하였다. 초기 근거지는 왕청현(王淸縣) 지인향(知仁鄕) 의란구(依蘭溝)였다. 1920년 5월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로 편성되어 6월 7일에 봉오동전투에 참가하여 승리를 거두었으며, 청산리전투에서도 홍범도(洪範圖)부대와 함께 전투에 참가하였다.
손재순은 충청북도 청주군(淸州郡) 북이면(北二面) 음대리(陰大里) 출신이며, 화룡현(和龍縣) 덕신사(德新社) 대후망봉(大後望峯)에 거주하였다. 1920년 2월 대한국민회 지방경호원(地方警護員)으로 활동하면서 간도(間島)에서 일경(日警)의 밀정(密偵)을 처단하다 체포(被逮)되었다.
이로 인해 손재순은 1922년 3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 8년 제령 제7호 위반과 살인으로 징역(懲役) 1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2. 1. 20)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2. 3. 13)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73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