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1년 12월부터 평북 개천군(价川郡)과 영변군(寧邊郡) 일대에서 중흥단(中興團) 단원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28년 4월 영변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렀다.
독립중흥단(獨立中興團)이라고도 불린 중흥단은 1920년 2월 중국 통화현(通化縣) 칠도구(七道溝)에서 백인균(白寅均)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였다.
1921년 12월 14일 중흥단원 선경환(宣璟煥)ㆍ김영호(金永浩) 등과 함께 평북 개천군 외서면(外西面) 마장리(馬場里)에서 자산가의 집을 조사하고, 같은 달 18일에 찾아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2년 1월 5일과 16일에는 평북 영변군(寧邊郡) 오리면(梧里面) 봉무동(鳳舞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 1922년 2월 3일과 5일, 2월 9일, 3월 20일과 22~24일에도 영변군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2년 5월 22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 신의주지청(新義州支廳)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공소하였다. 그러나 1922년 8월 15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공소가 기각되었으며, 같은 해 10월 2일 고등법원(高等法院)에서 상고도 기각되어 평양형무소(平壤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7년 7월 19일 출옥하였다.
1928년 4월 3일 평북 영변군 오리면(梧里面) 봉무동(鳳舞洞) 자산가의 집 세 곳에서 군자금 60여 원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같은 달 14일 평남 경찰에게 다시 체포되었다.
1928년 6월 29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징역은 얼마든지 시켜라. 그러나 나는 그대들의 법률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하며 공소하였다. 같은 해 9월 26일 평양복심법원(平壤覆審法院)에서 징역 7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壤地方法院 新義州支廳 : 1922. 5. 22)
- 判決文(高等法院 : 1922. 10. 2)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東亞日報(1922. 6. 14, 1928. 4. 23, 7. 1)
- 朝鮮日報(1927. 7. 22, 1928. 4. 20)
- 每日申報(1928. 4. 18) ㆍ中外日報(1928.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