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평남 강동군에서 농민단을 조직하여 강동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고, 1921년 평남 강동·성천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으며 동년 12월 평안남도통신연중앙기관을 조직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평남 강동군(江東郡)에서 이환욱(李桓郁)·이성규(李成奎)·이근배(李根培)·이석돈(李錫敦)·이죽수(李竹水)·최인택(崔仁澤)·최선식(崔善植)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후원할 것을 결의했다. 같은 해 8월 비밀결사 농민단(農民團)을 조직하여 강동경찰서(江東警察署)를 비롯하여 군내 원탄주재소(元灘駐在所)와 고천주재소(高泉駐在所)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계획에 따라 같은 해 9월 18일 서달선은 이근배·이죽수·최인태·최선식 등과 함께 강동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뒤, 같은 달 30일 강동군 원탄면(元灘面) 거주 이관식(李寬植)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3월 평남 대동군(大同郡)에서 1919년 11월 대동청년독립단(大同靑年獨立團)을 결성하고 활동하던 김봉규(金鳳奎) 등이 중국 관전현(寬田縣)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사령부로부터 무기를 배급받아 단원을 선발하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같은 달 30일 서달선은 김국홍(金國洪)의 안내로 김석준(金錫俊)과 함께 대동군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과 독립문서 배포 등의 활동을 하였고, 이어 4월 17일과 27일 평남 강동(江東)·성천(成川) 등지에서도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 23일 중국 관전현 광복군총영 모험부장 겸 비서 주석환(朱錫煥) 등과 강동군에서 광복군총영과 국내 독립단과의 통신연락을 목적으로평안남도통신연중앙기관(平安南道通信聯中央機關)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1월 7일 일본연합수색대에 의해 체포되어 같은 해 4월 19일 평양지방법원으로부터 소위 강도·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13년을 받고 공소하였다. 같은 해 8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평양형무소에서 7년 2개월 10일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29년 3월 2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秘密結社 光復軍靑年團 檢擧의 件 朝鮮騷擾關係書類(2)
- 新韓民報(1922. 2. 23, 3. 23)
- 每日申報(1921. 10. 26, 1922. 1. 19, 1. 30, 3. 1, 4. 7, 4. 21)
- 東亞日報(1921. 8. 14, 1922. 1. 19, 2. 21, 4. 8, 4. 21, 6. 4)
- 假出獄執行濟의 件 報告(京城刑務所長:1931. 6. 17), 假出獄의 件 具申(京城刑務所長:1931. 6. 11),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2. 8. 10) 假出獄關係書類
- 爆發物 投擲과 軍資金 募集 犯人 檢擧의 件(1920. 11. 29)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6)·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1978) 제11집 119~122면, 제14집 504~505, 940면
- 判決文(平壤覆審法院:1922. 8.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