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7년 2월경 중국 봉천성(奉天省) 집안현(集安縣) 오도구(五道溝)로 이주한 후, 1922년 3월경 대한통의부에 가입하여 제2중대 제3소대로 편입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3년 2월 13일 같은 대한통의부원 현용환(玄用煥)·이승근(李承根) 등과 함께 봉천성 통화현(通化縣)에서 부호들을 대상으로 군자금 400여 원을 모금하였다.
같은 해 11월 13일 일제의 사주를 받아 출동한 중국 관헌 순관(巡官) 손전청(孫殿淸)과 이구관(李區官)이 이끄는 중국군 50여 명이 고려성자(高麗城子)의 한 조선인 집에 머물고 있던 현용환이 이끄는 대한통의부원들을 포위 공격하였다. 이에 1시간 동안 이어진 전투에서 김성복(金成福)·이근택(李根澤) 등 8명이 전사하였다. 이때 이종기(李宗基)와 함께 상처를 입고 체포되었지만, 곧 석방된 것으로 보인다.
1924년 11월 대한통의부가 군정서(軍政署)·광정단(匡正團)·의우단(義友團)·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 등과 통합회의를 거쳐 정의부로 개편되자, 정의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음력 7월경 봉천성 개원현(開原縣) 전양목림자(前楊木林子)에서 정의부 부원으로 밀정을 처단하였다.
1926년 12월 이원주(李元柱)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중국 길림성(吉林省) 장춘(長春)에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8년 4월 20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살인, 강도’ 등을 이유로 징역 8년을 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8년 징역 6년 1월 7일로 감형되었고, 1934년 2월 1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신의주지방법원:1928. 4. 2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선인(鮮人)과 마적(馬賊))(중국 마적(馬賊) 및 불령선인(不逞鮮人)의 동정, 통화분관(通化分館) 주임:1923. 7. 3)
- 동아일보(東亞日報)(1927. 11. 3, 11. 4, 11. 24, 12. 20, 1928. 3. 12, 3. 21, 7.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