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20년대 중국 만주 북간도의 독립운동기지인 연길현(延吉縣) 상의사(尙儀社) 태평구(太平溝)로 이주하여 사립 동성학교 교사로 활동하였다.
박창래는 동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던 1920년 3월 1일 동성학교와 팔도구(八道溝)의 학생 약 70여 명을 인솔하고 팔도구 시장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5월경에는 재만 독립군단인 의민단(義民團)에 가입하였다
의민단은 1920년 4월경 북간도 왕청현(汪淸縣) 춘화향(春華鄕) 알아하(嘎呀河)에서 천주교 신도와 항일의병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군단이었다. 성립 초기 단장은 방우룡(方雨龍)이었으며, 부단장은 김연군(金演君)이었다. 1920년 7월에는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등과 엽합해 명월구(明月溝) 이청배(二靑背)에 사관양성소를 설립해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에는 홍범도(洪範圖)가 이끈 독립군연합부대의 일원으로 청산리대첩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의민단의 단원이 된 박창래는 1920년 5월말 이 군단의 활동자금 마련을 위해 모금 활동을 벌였다. 동지 수명과 함께 북간도 모록구(母鹿溝)에서 이주 한인 재산가들을 방문해 70여 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은 곧 일경에 포착되어 박창래를 비롯한 대원 다수가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박창래는 1920년 10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정치에 관한 범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0. 10. 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833~834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4 1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