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영생중학교(永生中學校)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19년 3월 최순탁(崔淳鐸), 박상보(朴相甫) 등과 함께 국내에 독립운동 소식을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독립신문을 제작하고, 배포하던 도중 같은 해 5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로 인하여 1920년 2월 12일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및 출판법 위반’ 등을 이유로 징역 1년을 받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징역 7월 29일로 감형되어 같은 해 6월 13일 출옥하였다.
1920년 출옥 후 고향의 야소학교(耶蘇學校)에서 교사로 재직하는 한편, 중국 관전현(寬甸縣)에 근거를 두고 안병찬(安秉贊)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와 연락을 취했다. 이어서 함경남도(咸鏡南道) 함흥군(咸興郡)을 중심으로 함경도 의용대(咸境道 義勇隊)를 조직하고, 군자금과 대원 모집 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함흥경찰서에서 활동을 포착하고,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위반’ 등을 이유로 다시 체포되어 송국되었다.
1923년 1월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이동하였다. 이때 국민대표회의 황해도 대표로 참석하여 같은 해 1월 22~23일 무렵부터 4월 초순 무렵까지 20~30회에 걸쳐 회의에 참석하였다. 같은 해 12월 무렵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동휘(李東輝)로부터 조선공산당이 조직될 것이라는 사실을 듣고, 이에 공감하고 함께하기로 하였다.
1924년 적기단(赤旗團)에서 장해(張海)·김우형(金禹衡) 등과 함께 집행위원(執行委員)으로 활동하였다. 이와 함께 같은 해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고려공산당 책임자회의에 출석하여 오르그뷰로(고려공산당 창립대회준비위원회) 결성에 참여하여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4월 러시아공산당 연해현 위원회 선전부 산하 약소민족부 설치에 참여하여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3월 무렵 이동휘의 서신을 가지고 국내로 파견되어 해외 상해파 공산주의자들의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 입당문제를 협의하고, 조선공산당 간부 김철수(金鐵洙)를 매개로 조선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같은 해 4월 초순 조선공산당 만주부(후일 만주총국(滿洲總局)으로 개칭)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12월 종로경찰서에 검거된 이후, 1928년 2월 무렵까지 취조를 받았다.
1929년 6월 28일 지방지회끼리 대표를 선출하여 정기대회를 대신하는 이른바 복대표대회가 개최되었을 때, 함흥구 대표위원에 선정되었지만 불참하였다. 이 무렵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어 장기간 조사를 받고, 1930년 9월 1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을 이유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3년 1월 21일 만기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1919. 10. 16)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 1920. 2. 12)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 1930. 9. 1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국사편찬위원회)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내지(在內地)(6)(소요사건(騷擾事件)에 관한 민정휘보(民情彙報)(제(第)14보(報)) 1919. 5. 3)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내지(在內地)(12)(함경도(咸鏡道) 의용대(義勇隊) 검거(檢擧),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경무국장(警務局長):1921. 3. 2)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상해가정부(上海假政府)(4)(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의 경과(經過)에 관한 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경무국장(警務局長):1923. 2. 27)
- 동아일보(東亞日報)(1923. 8. 4, 1924. 12. 25, 1927. 12. 4, 12. 5, 1930. 9. 12)
- 조선독립운동(김정명, 1967) 제2권 1080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204~2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