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4년 중국 통화현 합니하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22년 1월 무송현
에서 대한독립군비단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12월 겨울 이회영(李會榮) 일가와 함께 압록강을 건너 1911년 2월 초순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추가가(鄒家街)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이회영일가와 함께 이상룡(李相龍)·김동삼(金東三) 등과 황무지를 개간하며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매진하였다. 1911년에는 최초의 재만한인 자치기관인 경학사(耕學
社)를 조직하고, 1912년 통화현(通化縣) 합니하((哈泥河)에서 신흥강습소(新興講
習所)를 설립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1월에는 무송현(撫松縣)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단장을
맡아 서간도와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군비단은 1919년 11월 1일 장백현(長白縣) 17도구(道溝) 왕가동(王哥洞) 동평덕
(東坪德) 이동백(李東白)의 집에서 이재연(李在然)·이태걸(李泰杰)·이병률(李秉
律)·김찬(金燦) 등이 조직한 단체로, 1921년 일제의 탄압으로 본부를 무송현 화
개산(花開山)으로 옮기고 6월 이희삼(李熙三)을 총단장으로 선출하면서 부서와
임원을 개편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民(1936. 5. 25)
- 不逞者의 處分(1914. 12.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4
- 間島 및 同 接壤地方에 있어서 排日團體 및 親日團體 調査의 건(1922. 2.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32·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局, 1934) 2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