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4년 11월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촌에서 대동회 선전원으로 선전문을 배포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10월경 길림성(吉林省) 안도현(安圖縣)에서 연두익(延斗翼) 등이 청년회를 개편하여 대동회(大同會)를 조직하고 총부(總部)를 액목현(額穆縣) 흑석둔(黑石屯)에 설치할 때 의열단(義烈團), 의용군사회(義勇軍事會), 광복단(光復團), 국민회(國民會), 독군부(督軍府) 등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대동회는 각 단체의 위원합의제도로 운영되었다.
대동회는 창립 직후 간도 방면으로 중앙집행위원 김관(金瓘)을 특파하자, 장태화는 같은 해 11월 김관 휘하에 들어가 선전원(宣傳員)으로 임명되어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촌(龍井村)에서 선전문을 배포하였다. 같은 달 28일 용정촌 시내 잡화상 지남극(池南極)에게 대동회 선전문과 대한민국임시정부 발행 독립공채권을 제시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30일에도 용정촌 자산가 오명언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시도하다가 12월 17일 체포되었다.
1925년 5월 8일 소위 강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5일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일제 말기에는 국내 함남 북청(北靑), 갑산(甲山), 혜산(惠山)을 근거지로 삼고 이영대, 김해산, 조두희, 박창건, 이우영, 이정섭, 박인진, 주동림 등과 연결되어 활동했다. 간도에서는 천도교 용정종리원을 근거로 하여 활동하면서 안도현 일대의 독립운동단체와의 연락,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후 독립운동단체로의 송금, 무기 보관과 전달 등 업무를 수행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3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8권 714면
- 刑事控訴事件簿
- 東亞日報(1925. 1. 17)
- 時代日報(1925. 1. 17)
- 大同會 女子 宣傳員 檢擧에 關한 件(1924. 12. 2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