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 관전현(寬甸縣)으로 망명하여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1919년 11월 대한독립청년단이 확대 개편된 것으로, 주요 간부로는 총재 안병찬(安秉瓚), 부총재 김찬성(金燦星), 총무 차경신(車敬信)·김승만(金承萬), 재무부장 김시점(金時漸), 편집부장 함석은, 통신부장 오학수, 교육부장 최지화(崔志化), 교제부장 김두만(金斗萬), 부총재 겸 노동부장 박춘근(朴春根), 경호부장 여순근(呂淳根), 서기 오능조(吳能祚), 교육부장 이탁(李鐸) 등을 들 수 있다.
1920년 1월 14일 장지흥은 대한독립단 단원 김정백(金正白)·김진화(金振華)·백운한(白雲翰) 등이 동단 학무총장(學務總長) 이탁(李鐸)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출장명령을 받고 출발할 때, 동 지부원 최지화의 소개로 김도윤(金道潤)과 함께 국내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동지들과 함께 평양에서〈내지(內地) 자산가(資産家) 제씨(諸氏)에게 고함〉이라는 문서를 정익로(鄭益魯) 외 수명에게 배포하였다. 그리고 안(安)씨로부터 20원, 김영선(金榮善)에게 30원, 정현조(鄭賢朝)에게 10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고 대한독립재무부 명의로 수령증을 교부하였다.
1920년 겨울 한진산(韓震山)·문인곤(文仁坤) 등과 함께 국내로 출장하여 활동하던 중 평북 경부(警部) 김극일(金極一)을 만나 도강(渡江)을 인도해 준다는 꼬임에 빠져 안동현(安東縣) 진강산(鎭江山)에서 암살되어 순국하였다. 사체(死體)가 압록강 얼음속에 던져졌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其二)(국회도서관) 736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5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284·28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