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박동원은 1919년 2월 18일과 20일 양일간 국자가(局子街) 하장리(下場里) 연길(延吉) 도윤공서(道尹公署) 외교과원(外交科員)으로 있던 자신의 집에서 김영학(金永學)·김 정(金精)·박경철(朴敬喆)·구춘선(具春先)·고 평(高平)·이홍준(李弘俊)·이성근(李聖根)·김순문(金舜文)·강용헌(姜龍憲)·이성호(李盛浩)·박정훈(朴貞勳) 등 독립운동자들과 함께 모여 광복단을 조직하고 비밀회의를 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하였다.
1. 북간도 내 각 교회와 모든 단체는 단결, 협력하여 조국독립운동에 힘을 다 바칠 것
2. 모든 간도 내의 단체는 머지 않아 연해주(沿海州)에서 협의, 반포할 한민족의 독립선언서의 공포와 동시에 시위운동을 개시할 것
3. 한민족의 독립선언서가 발표되면 간도 안의 각 단체의 유력자는 용정(龍井)에 회집하여 독립 선언을 하여 기세를 올릴 것
한편 박동원은 이홍준·이성근·김영학·김 정 등과 함께 일제와 결사투쟁을 맹세하는 의미에서 혈서를 써서 결의하였다.
1919년 3월 13일 거행된 용정에서의 만세운동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그는 동일 중국관헌으로부터 면직당하고, 3월 26일 보다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하였다.
동년 4월 초 박동원은 김 정·이흥삼(李興三) 등과 함께 무기조달을 위하여 애훈(愛琿) 지방으로 가고자 하였으며, 4, 5월 초목이 무성할 때는 1차적으로 훈춘(琿春)을 거쳐 국경으로 진입하여 활동하고자 하였다.
동년 5월에 박동원은 학생 5명을 데리고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여 이동휘(李東輝)와 만나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 8월 하순 연해주 니꼴리스크에서 장티푸스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96면
- 한국민족운동사료(3·1운동편, 其三)(국회도서관) 52·54·91·92·128·157·488·544·551·554·55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6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6∼8·14·21·27·424·4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