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15년경 만주로 건너가 1921~24년까지 대한통의부 해룡현 지방통신원 겸 검
무원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1년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 가입하여 1924년 음력 9월까지 대한통의부
해룡현(海龍縣) 지방통신원 겸 검무원(檢務員)으로 임명되어 일제 관헌의 동태
와 경비 등 상황을 파악하여 이를 통신·연락하였다.
대한통의부는 1922년 8월 환인현(桓仁縣) 남구 마권자(馬圈子)에서 열린 남만
한족통일회에서 무장독립운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 남만주 일대 독
립군 단체가 통합하여 조직한 단체이다. 중앙부는 관전현(寬甸縣)에 두고, 흥경
(興京)·환인·통화(通化)·집안(集安)·유하(柳河) 등 12개소에 총영(總營)을 배
치하여 일제의 주요 기관 파괴와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펼쳤다.
이후 김소범은 1928년 12월 20일 해룡현 도목구(倒木溝)의 부친 김경현의 집
에 머물러 있다가 이를 알아챈 일본영사관경찰서 경찰들에게 붙잡혀 이듬해인
1929년 1월 1일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1929년 2월 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 치안유지
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2년 1개월 18일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31년 2월 8일 만기 출소하였다.
출소 두 달 뒤인 4월 중순경 다시 봉천성 심해선(瀋海線) 산성자(山城子) 동흥
정미소(東興精米所) 내 일명 도목구로 갔다고 일제는 파악하고 있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受刑人名簿
- 東亞日報(1929. 1. 18)·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 警務局, 1934) 82면
- 朝鮮日報(1929.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