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8월 중국 (中國) 길림성 (吉林省) 연길현 (延吉縣) 용정 (龍井) 에서 공산주의를 연구하는 건설자동맹회 (建設者同盟會) 를 결성해 도서부 (圖書部) 위원 (委員) 으로 활동하다가 동년 9월 체포되었고, 이후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만주총국 (滿洲總局) 의 동만도 (東滿道) 비서 (秘書) 로 활동하던 중 체포되어 1928년 12월 기소 (起訴) , 1930년경 징역 6년을 받고 옥고 를 치르다가 1931년 4월 병세 악화로 형집행정지 (刑執行停止) 석방 (釋放) 되어 요양하던 중 동년 5월 병사 (病死)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 옥고(獄苦) : 옥살이를 하는 고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철산은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 용정(龍井)에서 대표적인 사회주의 교육기관 동양학원(東洋學院)에서 수학하였으며, 사회주의 학생단체로 신사상을 연구하는 건설자동맹회(建設者同盟會)를 조직해 도서부위원(圖書部委員)으로 활동하였다. 1923년 7월 '동양학원 탄압사건'으로 일본영사관 경찰에 한때 검거되었고 1923년 9월 국제공산청년데이 격문살포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이후 김철산은 1927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 제7야체이카에 배속되었으며, 1928년 1월 재동만조선청년총동맹 중앙집행위원, 7월 조공 동만도[ml파] 선전부장 및 적색구원회(赤色救援會) 조직국장이 되었다. 10월 제2차 간도공산당사건으로 검거되었으며, 1931년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1931년 4월 병세 악화로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요양하던 중 동년 5월 병사(病死)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共産主義系統 建設者同盟 會員의 檢擧에 關한 件(間島總領事, 1924. 9. 1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鮮人과 過激派(5)
- 中外日報(1930. 3. 26, 8. 5, 1931. 5. 12)
- 東亞日報(1928. 12. 4)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 성대경) 133~134면
- 독립(1946. 5. 8)
- 朝鮮日報(1930. 6. 18, 1931. 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