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북 성진(城津) 사람이다.
일찍이 북간도 용정(龍井)에서 기독교 학교 교사로서 활동하였다. 그 후 일본의 신호(神戶)에 유학하여 1919년 3월까지 신호신학교에 재학 중이다가 국내에서 3·1운동이 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만주에서도 만세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에 참가하기 위하여 학교를 그만두었다.
동년 3월 하순 신호를 출발하여 국내를 경유, 4월 8일 간도 용정촌(龍井村)에 도착하여 기독교 선교사로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등에 가담하여 항일운동에 참가하고 있던 정재면(鄭載冕)과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일제 관헌의 취체가 엄중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기 어렵게 되자, 동지 이익찬(李翼燦)과 함께 일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영국인이 경영하는 예수교 제창병원(濟昌病院)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이 병원을 중심으로 독립신문과 항일문서 등을 간행하여 재만동포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켰을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들을 몰래 은닉하기도 하였다.
1919년 5월 상순에 김상호가 조직한 맹호단(猛虎團)에 참여하여 참모로서 젊은 학생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시켜 독립운동에 적극 나서도록 하였다. 아울러 그는 일본 관헌으로 근무하는 조선관리들에게 설득하는 글을 보내어 사직을 권고하고, 혹은 재산이 많은 조선인 경찰관 4명을 자신의 근거지인 제창병원으로 불러들여, 이들을 설득하여 전향하도록 유도하였다. 1919년 5월 11일에는 총영사관 순사 안창호(安昌鎬)를 설득, 사직하도록 하였다. 또한 용정촌 조선인 거류민 회장 이희덕(李凞德)을 불러내어 제창병원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하도록 권유하기도 하였다.
방원성의 이러한 활발한 항일운동은 일경의 주목을 받아 1919년 11월 체포되어 정치에 관한 협박죄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1921년에는 동경(東京) 유학생들이 워싱톤에서 개최되는 태평양회의를 기회로 결의문과 선언문을 발표할 때 이에 동참하였다. 그리고 이를 임시정부에 전달하기 위하여 상해(上海)에 파송되었다.
상해에 온 방원성은 1922년 8월 동지 9명과 함께 연서로 국민대표회의의 개최를 촉구하였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중략) 우리는 독립운동의 중단에 대한 유일한 구제책은 전국민의 대화합, 대결정이라고 인식하고 이에 다소간의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국민대표 소집의 임무를 자임하고 국민대표회주비회를 후원하여 이로써 가장 시급한 국민대표회를 개최하는데 노력하고자 한다. 차제에 이에 대한 지장, 반항하는 세력은 여하한 이유를 막론하고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주비회에 있어서도 사소한 점을 고려하다가 주저하여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있으면 우리가 단연코 행동을 취하도록 임을 빌려줄 것을 이에 선언한다.
1923년 국민대표회의가 개최되자 2월 3일 조선청년단독립단 대표로서 참가하였으며, 2월 5일에는 교육위원에 당선되었다. 동년 2월 27일에는 대표들이 계통파(繼統派)와 건설파(建設派)로 나누어지자 건설파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한편 1923년 6월 국민대표회의가 결렬되자 창조파(創造派) 김규식(金奎植)·신 숙(申肅)·윤 해(尹海)·원세훈(元世勳) 등은 동년 8월 블라디보스톡으로 가 러시아 제3공산당의 지원 하에 1924년 2월 국민위원회(國民委員會)를 조직하고자 하였다. 이 때 그들은 한국독립당 조직안 등을 마련하고 아울러 국민위원 10인을 보선하고 또한 후보 위원 10명을 선거하였다. 이 때 방원성은 김우희(金宇希)·박경종(朴慶鍾)·홍학수(黃學秀)·강백규(姜伯奎)·조권식(趙權植)·백낙현(白洛鉉)·박경철(朴景喆)·정인교(鄭寅敎)·나창헌(羅昌憲) 등과 함께 당선되었다.
이처럼 간도와 상해 지역에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방원성은 1924년 4월 하순 심장병으로 상해 홍십자의원(紅十字醫院)에서 입원 치료 중 동년 6월 3일 29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신문(1924. 7. 26)
- 동아일보(1922. 1. 18)
- 조선민족운동년감 17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3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298·299·431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04·305·309·51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74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33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13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84면
- 매일신보(1919. 11. 18)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52·154·1055·17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