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7월 군대 (軍隊) 의 강제 해산 (强制解散) 이후 (以後) 연기우 의진 (延基羽義陣) 의 아장 (亞將) 으로 경기도 (京畿道) 강원도 (水原道) 충청도 (忠淸道) 각지 (各地) 에서 활동 (活動) 하였고 1910. 1월경 (月頃) 삭녕군 (朔寧郡) 에서 의병 (義兵) 30여명 (餘名) 을 이끌고 세금 (稅金) 을 수송 (輸送) 하던 관리 (官吏) 와 일 기마헌병대 (日騎馬憲兵隊) 를 기습 (奇襲) 하여 사살 (射殺) 하였으며 철원 (鐵原) 평강 (平康) 등지에서 4회의 교전 (交戰) 을 벌이는 등의 활동 (活動) 을 하였으나 목전면 산성곡 (木田面山城谷) 에서 적 (敵) 의 야습 (夜襲) 을 받아 전사 (戰死)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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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07년 7월 대한제국(大韓帝國) 군대의 강제해산 이후 의병장 연기우(延基羽)의 아장(亞將)으로 강화(江華)·삭녕(朔寧) 등 경기 각지에서 일군과 격전을 폈다.
1910년 1월경 의병장 현청농(玄靑 ) 및 향도관(響導官) 김공선(金公先)과 의논하여 삭녕군 세금수송 일자를 탐지한 후 의병 30여 명을 거느리고 수욱진(水郁津) 부근 송림 사이에 매복하였다가 세무관리와 일제 기마헌병대를 기습하여 사살하는 등의 활약을 하였다. 이어 같은 달 철원(鐵原)·평강(平康) 등지에서 4회의 유격전을 감행하였으나 목전면(木田面) 산성곡(山城谷)에서 적의 야밤 습격을 받아 최후까지 응전하다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68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60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1卷 484·533·583·584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