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소연은 1923년 북간도지역 한인자제의 민족교육을 위해 설립된 용정(龍井)의 동흥중학(東興中學) 교사로 활동하였다. 1925년 5월에는 동흥중학교의 기본금 확보를 위해 평양에서 자금을 모금하다가 평양경찰서 일경에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26년 1월에는 동만청년총연맹(東滿靑年總聯盟) 창립대회에 참가하여 집행위원이 되었고, 같은 해 용정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의 교사로도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에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구역국 결성에 참여해 집행위원이 되었다. 동만구역국은 성립 후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가진 동만주 여러 계열의 조직들을 정리한 뒤 새롭게 용정·평강·화룡·국자가·명월구·왕청·나자구·훈춘 등에 17개의 세포조직을 만들었다.
이와 같이 조직을 정비한 뒤 김소연과 이주화(李周和)가 주축이 된 동만구역국은 1927년 10월 제1차 간도공산당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당시 조선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가 검거되어 서울에서 공판을 받고 있는 동지들의 공개재판을 요구하기 위한 시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동만구역국 인물들은 철저히 비밀을 지키며 시위를 준비했으나 사전에 일제의 간도영사관 경찰서에 발각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김소연과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책임비서 대리인 최원택(崔元澤) 등 당원 29명이 일제에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김소연은 1928년 12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김소연은 일제의 고문으로 중병을 얻었고, 이로 인해 1929년 2월 병보석으로 출옥했으나 그 해 3월 25일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間島共産黨 關係者 死亡에 관한 件(1929. 3. 27) 사상문제에 관한 조사서류 6
- 在間島思想團體의 行動과 共産主義 宣傳員의 活動에 관한 報告(1926. 10. 16)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43)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8. 12. 27)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86면
- 1926년 10월중 間島(揮春縣을 包含) 및 接壤地方 治安情況(1926. 11. 10)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44)
- 時代日報(1925. 5. 21)
- 東亞日報(1928. 5. 1, 1929. 2. 14·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