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중국 관전현의 대한독립단 관남지단에 가입한 뒤 검무원에 임명되어 일제 관헌의 내정과 경비상황 조사·보고,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고, 일제 관헌의 밀정을 처단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일찍이 1911년 중국 관전현(寬甸縣) 안자구(安子溝)로 이사하였고, 1920년 4월 경 관전현 소재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관남지단(寬南支團) 총무 박명화(朴明化)의 권유로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그 부하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1922년 2월 초순 검무원(檢務員)으로 임명되어 일제 관헌의 동태 파악, 강안(江岸) 경비상황, 통신 연락 등을 조사·보고하는 한편, 독립자금을 모집하여 관남지단으로 보냈다.
1922년 음력 3월 11일 단원 이기준(李基俊)·김기원(金基元) 등 10여 명과 함께 자신의 집 거실에 모여 관전현 나자구(羅子溝)에 사는 임형정(林亨貞)·임형옥(林亨玉)이 일제 관헌의 밀정이므로 이들 일가족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오후 11시경 권총 등을 휴대하고 임형정의 집을 방문한 김세용 등은 달아나는 임형정·임형옥을 총으로 처단하였다. 그 후 1924년 9월 30일 밤 신의주에서 배를 타고 몰래 압록강을 건너다가 신의주경찰서 형사들에게 붙잡혔다.
1925년 6월 26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살인미수·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5년 7일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9년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新義州地方法院:1925. 6. 26)
- 東亞日報(1924. 10. 7)·時代日報(1924. 10. 8)
- 假出獄의 件 보고(平壤刑務所長:1933. 9. 14), 집행지휘서(平壤覆審法院:1925. 7. 25) 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