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0년 중국 연길현에서 대한국민회 제15지회 서기로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일본관헌과 밀정 등을 처단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초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서 연길현 숭례향(崇禮鄕) 대명구(大明溝)에 제15지회를 설치하자, 당시 중국 연길현(延吉縣) 상의사(尙義社) 소재 신흥동학교(新興洞學校) 교사로서 김희백(金熙伯)·강동렬(姜東烈) 등과 함께 가입하였다.
대한국민회는 간민회(墾民會)를 이은 조선독립기성회(朝鮮獨立期成會)의 후신으로 3·1운동 이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더불어 북간도지역을 대표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였다. 대한국민회는 본부를 연길현 춘양향(春陽鄕)에 두고, 산하에 동·서·남·북·중 등 5개 지방회와 70개에 달하는 지회를 설치하였다.
가입 후 김희백은 재무, 김성한은 서기, 강동렬은 통신원으로 임명되어 군자금 모집, 무기 확보, 밀정 취조 등의 활동을 하였다. 같은 해 3월 김성한 등 3인은 한중선(韓仲先)·이형규(李亨奎)·이창근(李昌根)·김성배(金聖培) 등과 일본관헌과 내통한 밀정 이병준(李炳俊)을 붙잡아 총으로 처단했다가 간도일본영사관 경찰에게 붙잡혔다.
1925년 1월 21일 청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살인·강도·대정(大正)8년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2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5년 3일 1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6년 11개월 이상 옥고를 치렀다. 1931년 6월 10일 가출옥으로 석방되었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5. 1. 25)·朝鮮人 經營 私立學校 聯合運動會의 건(1917. 7. 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 6
- 假出獄執行濟의 건 보고(京城刑務所長:1931. 6. 10), 假出獄의 건 보고(京城刑務所長:1931. 6. 5), 집
- 判決抄本(淸州地方法院:1925. 1. 21)
- 행지휘서(京城覆審法院:1925. 3. 10) 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