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1923년 9월 천마산대 출신 독립대원들과 함께 평북 희천군의 창참주재소를 공격하여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순사 1명을 처단하는 활동에 참여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3년 9월 천마산대(天摩山隊) 사령관 최시흥(崔時興)의 휘하에서 활동하였던 최오산(崔午山)의 권유로 평북 희천(熙川)에서 조준룡(趙俊龍) 등과 함께 독립청년단(獨立靑年團)을 조직하고 같은 달 21일 최오산 등 독립단원이 희천군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소재 창참주재소(倉站駐在所)를 공격하여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순사 1명을 처단할 때, 독립단원을 도와 길을 인도하고 일제 경찰들의 동정을 정탐하여 보고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23일경 체포되었다.
천마산대는 1919년 평북 의주군(義州郡)에서 최시흥·최지풍(崔志豊) 등이 조직한 항일무장 단체로 면사무소와 주재소 공격, 일제 관리와 경찰 처단, 총기확보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0년 7월 일본군이 천마산대 본부를 공격함에 따라 만주로 이동하여 그해 10월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에 합류하였다.
1924년 5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대정(大正)8년제령(制令)제7호 위반·방화·살인방조·동(同) 미수·소요(騷擾)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7년 11월 1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東亞日報(1923. 9. 25, 9. 27, 10. 3, 1924. 5. 4, 5. 19, 1927. 11. 23)
- 朝鮮日報(1927. 11. 21)·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570~5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