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살(被殺) : 죽임을 당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김기원은 1920년 대한독립단에서 활동하였다. 김기원이 활동한 이 단체는 1919년 4월 15일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결성되었다. 의병장들은 1910년 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점된 후 서간도 지역에서 보약사(保約社)·향약계(鄕約契)·농무계(農務契)·포수단(砲手團) 등 단체를 조직하고, 독립역량을 기르던 중 3·1운동이 발발하자 이를 계기로 기존단체를 통합하여 무장투쟁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대한독립단 창립총회에서는 창립선언문과 함께 전문 22조의 규칙을 통과시키고 다음과 같이 임원을 선정하였다.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백삼규(白三圭), 자의부장(諮議部長) 박치익(朴治翼), 사한장(司翰長) 김기한(金起漢), 참모장 윤덕배(尹德培), 부참모장 박양섭(朴陽燮), 총참모 조병준(趙秉準), 참모 송상규(宋尙奎)·강규묵(康圭默)·조응걸(趙膺杰)·이정근(李廷根), 총단장 조맹선, 부단장 최영호(崔永浩)·김원섭(金元燮), 총무부장 김평식(金平植), 부총무부장 강유상(康有常), 총무원 김 일(金鎰)·한관모(韓寬模), 재무부장 전덕원(全德元), 재무 이병기(李炳基), 회계 홍 주(洪疇), 사법부장 이웅해(李雄海), 교통부장 양기하(梁基瑕) 등이다. 김기원이 활동한 대한독립단에서는 이 시기 만주지역 대부분의 독립운동단체들과 마찬가지로 무장투쟁을 통하여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무기 및 군수품을 구입하는 것은 절대적이었다. 이를 위해 군자금의 모집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대한독립단에서는 유하현 삼원보에 위치한 본부 및 국내, 서간도의 각 지단에 재무부를 설치하고 군자금의 모집 활동을 적극 추진하였다. 또한 무장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독립군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만주와 국내에서의 일본인 및 친일파 숙청 그리고 일제의 기관 파괴 등도 전개하는 한편 국내에 대한독립단의 지단을 조직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대한독립단에서 김기원은 지희전(池熙銓)과 함께 환인(桓仁) 방면에서 일제의 친일기관인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는 등 친일파 제거에 진력하였다. 한편 김기원은 1923년 2월 15일 대한통의부원(大韓統義府員)으로서 홍학순(洪學淳)과 함께 국내에 진입하여 동년 3월 15일 의주군 형하동(炯下洞) 고운식(高雲植) 집에서 현금 250원을 모금하였으며, 동년 4월 15일에는 김석하(金錫河)의 명령에 따라 홍학순과 함께 국내에 진입하여 동년 동월 18일 용천군(龍川郡) 양광면(楊光面) 용계동(龍溪洞) 이세훈(李世勳)의 집에 들어가 동인으로부터 현금 300원을 모금하였다. 김기원은 대한통의부가 1923년 2월 대한통의부와 의군부(義軍府)로 분열되자 의군부에 가담하였다. 분열의 발단은 국내에서 온 양기탁(梁起鐸)과 전덕원과의 불화와 대립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나 인선, 조직 등의 표면적인 문제에서 기인된 것이 아니라 1920년 이래로 계속되어 온 공화적 민주주의 계열과 복벽적 민족주의 계열과의 이념투쟁이었던 것이다. 즉 광복 후에 수립될 민족국가의 형태와 이념문제를 놓고 민족독립운동가들 간에 대립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제5중대장 김명봉(金鳴鳳)과 부대장 조태빈(趙泰 )은 통의부를 불신한다는 혐의로 피살되고 제5중대의 무기가 타중대에 의하여 강제로 압수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전덕원은 환인현(桓仁縣)에서 새로이 항일군단을 조직하여 통의부에서의 분립을 선언하고 의군부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의군부의 주요 간부를 보면 총장 채상덕(蔡相德), 군무부장 전덕원, 정무부장 김유성(金有聲),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사령장 오석영(吳錫泳), 부관 강규묵, 참모장 박대호(朴大浩), 대대장 박일초(朴一楚) 등이었다. 의군부는 조직된 이후 융희(隆熙) 연호를 사용하고, 통의부를 적대시하며 통의부에서 관할하던 각 지방을 점령하고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김기원은 1923년 8월경 의군부 군무총감 전덕원으로부터 유격대장 이경일(李京日)의 지휘하에 동지 50명과 함께 평북 의주군(義州郡) 청성진(淸城鎭) 주재소의 습격을 명령받았다. 그리하여 작전을 전개한 후 이경일 등 동지 20명과 함께 귀환하던 중 관전현(寬甸縣) 백석랍자(白石砬子)에서 알력이 심하던 통의부 김석하(金錫夏)부대에게 습격을 받고, 유창렬(劉昌烈)·박초식(朴楚植)·박인원(朴仁元) 등과 함께 팔조구(八條溝)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4권 994-99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64·28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