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진남포(鎭南浦) 사람이다. 1920년 2월 국내에서 활동하던 김관성은 동지 장명환(張明煥)·이춘산(李春山)·김태호(金泰浩)·박정호(朴正鎬) 등과 함께 만주 유하현(柳河縣)에 본부를 두고 있던 한족회(韓族會)의 소장파 현정경(玄正卿)·현익철(玄益哲)·이시열(李時說)·이호원(李浩源)·김석선(金錫善)·홍원경(洪元京) 등과 함께 광한단(光韓團)을 조직하였다. 1920년 7월경 김관성은 박민희(朴敏熙)·이명환(李明煥) 등과 함께 평안남북도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11월 초에는 단장 이시열의 명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한 결사모험대원 중 박정호(朴正鎬)·한 일(韓一) 두 명과 함께 대한독립단의 궁인성(弓寅聖)과 긴밀한 연락을 하면서 평양의 자산가인 김진근(金鎭根)의 집에서 많은 군자금을 모금하기도 하였다. 또한 11월 초순에는 이명환과 함께 결사모험대를 조직하여, 평양 시내 계리(鷄里) 북 금융조합 숙직실 안에 연락교통기관을 두고 지방조직, 군자금 모금 등을 전개하는 등 대담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12월에는 평안남도 경찰의 습격을 받아 교전 끝에 동지인 박문학(朴文學)은 전사하고 김관성은 부상을 입고 탈출하였다. 1922년 8월 30일 남만주 환인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통군부(統軍府) 대표 등 71명이 참석하여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를 결성하자, 김관성도 여기에 참여하여 검무감(檢務監)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함께 대한통의부에서 활동한 인물로는 총장 김동삼(金東三), 부총장 채상덕(蔡相悳), 비서과장 고활신(高豁信), 민사부장 이웅해(李雄海), 검무국장 최명수(崔明洙), 교섭부장 김승만(金承萬), 선전국장 김창의(金昌義), 군사부장 양규열(梁圭烈), 법무부장 현정경(玄正卿), 재무부장 이병기(李炳基), 학무부장 신언갑(申彦甲), 실업부장 변창근(邊昌根), 식산국장 박득산(朴得山), 권업부장 강제하(康濟河), 교통부장 오동진(吳東振), 교통국장 황동호(黃東浩), 참모부장 이천민(李天民) 등을 들 수 있다. 1926년에는 정의부의 양기탁(梁起鐸)·현정경·고활신·곽종육·오동진·정이형 등이 주축이 되어 소련에서 돌아온 이규풍(李圭豊)·주진수·최소수(崔素水), 그리고 국내의 천도교 혁신파인 고려혁명위원회 김봉국(金鳳國)·이동락(李東洛), 형평사의 이동구(李東求)·송 헌(宋憲) 등이 힘을 모아 동년 4월에 길림(吉林)에서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을 조직하자 여기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 조직의 주요 간부는 위원장 양기탁, 책임비서 이동구, 위원 현정경·오동진·고활신·현익철·김좌진 등이었다. 그 후 길림성 회덕현(懷德縣) 오가자(五家子)에서 요하농장(遼河農場)을 경영하면서 변대우(邊大愚) 등과 함께 농민을 이주시키는 등 재만한인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장진환(張鎭煥)과 함께 공산주의자에게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987·988·989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1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67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30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60·288·452·524·55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304·431·6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