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1919년부터 1925년까지 서간도(西間島)에서 한족회(韓族會)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에 소속되어 군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였다.
한족회는 1919년 1월 서간도 유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이전부터 동(同) 지역의 독립운동을 주도해 오던 부민단(扶民團)의 사업과 활동을 계승한 조직이었다. 한족회는 이주 한인의 자치와 교육을 위한 활동에 치중하였으며, 주요 간부로는 정무총장에 이탁(李沰), 서무부장에 김동삼(金東三), 학무부장에 윤기섭(尹琦燮)이 활동하였다. 또한 한족회에서는 독립전쟁을 수행할 기관으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고 한인 자제들에 대한 군사교육을 강화는 한편, 서로군정서를 조직하였는데 교관으로는 지청천(池靑天), 신팔균(申八均), 김경천(金擎天) 등이 활동하였으며, 남만지역 최대의 항일독립군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권재호는 평안북도(平安北道) 자성군(慈城郡) 출신이며, 독립운동 당시에는 길림성(吉林省) 몽강현(蒙江縣)에 거주하였다. 1919년 10월경부터 1922년 8월까지 중국 요녕성(遼寧省) 통화(通化),임강(臨江),유하현 등에서 광복단(光復團) 자성군감(慈城郡監), 한족회(韓族會) 통동지부(通東支部) 총관(總官)과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교섭과장(交涉課長) 및 사령부(司令部) 분대장(分隊長), 특무부원(特務部員) 등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독립군의 양성과 군자금의 모집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권재호는 1925년에는 참의부(參議府)에서도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鮮內外 一般 情況(1919. 11. 1~11. 30)(朝特報 第79號:1919. 12. 3),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5)
- 不逞鮮人團 組織 變更에 關한 件(機密公 第19號:1920. 5. 2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8)
- 鴨江沿岸地方 不逞鮮人 狀況에 關한 件(機密公 第80號:1920. 7. 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19)
- 不逞鮮人 名簿 送付의 件(機密公 第27號:1921. 7. 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8)
- 不逞鮮人 情況에 關한 件(機密 第41號:1921. 7.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9)
- 不逞鮮人 行動에 關한 件(機密 公第49號:1921. 8.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29)
- 不逞鮮人 情況의 件(機密公 第76號:1921. 11. 3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0)
- 不逞鮮人 行動에 關한 件(機密公 第40號:1922. 6. 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집 258, 1036면
- 輯安縣 및 그 附近에 있어서 不逞鮮人의 一般狀況(關機高收 第10487號의 1:1922. 8. 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3)
- 判決文(高等法院:1922. 1. 30)
- 國外容疑朝鮮人名簿(조선총독부) 131면
- 通化 輯安 桓仁 寬甸 各縣下에 排日運動 最近 情況(朝特報 第66號:1919. 10. 29),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4)
- 鮮內外 一般의 狀況(10月1日~10月31日)(密 第102號 其574:1919. 11. 8),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