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남 문천(文川) 사람이다. 독립운동가 공진원(公震遠)의 부친이다. 1905년 일제에 의하여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으며, 그 후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군(洪範圖軍)에 가담하여 백두산부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편 구한말 나 철(羅喆)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민족 종교인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재만동포의 민족의식 고취에 진력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1920년 대종교인이 중심이 되어 무송현(撫松縣)에서 흥업단(興業團)이 조직되자 이에 참여하여 김 호(金虎)·김 혁(金赫)·윤세복(尹世復) 등과 함께 산업의 진흥과 대일항쟁을 위해 진력하였다. 1920년 일제의 간도출병으로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우스리스크로 이동한 공창준은 1921년 11월경 부하 500명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다 흉작으로 생계가 막연해지자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과 연계하여서 다시 음력 10월 안도현(安圖縣)으로 이동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7월 중동선 철도 동부선(中東線鐵道 東部線)의 연변인 위하현가(葦河縣街)에 위치한 김광택(金光澤)의 집에서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이 조직되자 이에 가담, 조직부 위원으로 임명되어 징모와 보습품 마련에 노력하였다. 당시 한국독립당에서 함께 활동한 인물로는 홍 진(洪震)·이청천·이장녕(李章寧)·신 숙(申肅)·정 신(鄭信) 등을 들 수 있다. 공창준은 만주사변 이후인 1937년경 한국독립당과 한국독립군의 상황을 한국독립당의 후신인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 본부에 보고하기 위하여 남경(南京)에 갔다가 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백강회고록(조경한, 1985) 9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2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396·397면
- 대종교인과 독립운동연원(이현익, 1962) 8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