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음력 5월부터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현(延吉縣)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1중부지방회(中部地方會) 경호부원(警護部員)으로 군자금 모집 및 일제 밀정 처단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국민회는 1919년 중국 길림성 북간도(北間島)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로 북간도국민회(北間島國民會)로도 불렸다. 북간도의 4개 현(縣)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각 촌락에 지회(支會)를 두었다. 회원은 약 8,000여 명이었으며, 1920년 초에는 지회의 수가 80여 개에 이르러 동만(東滿)의 독립운동단체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이후 독립전쟁을 추진하기 위해 홍범도(洪範圖)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을 후원하였으며, 1920년 초에는 안무(安武)를 사령관으로 하여 직접 국민회군(國民會軍)을 조직하고 각 지회에 교관을 파견하여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1920년대 초 만주의 대표적 무장투쟁단체였다.
고덕수는 1920년 음력 5월 8일경 연길현 용지사(勇智社) 토능보(土能堡)에 거주하는 일제 밀정 최병찬(崔秉贊)을 응징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음력 7월 10일경 연길현 상의사(尙儀社) 동불사(銅佛寺)에 거주하는 밀정 박흥준(朴興俊)을 체포하고 동지들과 함께 지인사(志仁社) 흥도자(興道子) 부근의 계곡에서 처단하였다. 또한 음력 7월 10일경에는 연길현 상의사 간동(間洞) 홍재명(洪在明)의 집에서 밀정 이주경(李周京)을 체포하여 처단하였다. 이후 노령(露領) 니콜리스크 방면으로 피신했으나 두도구(頭道溝)에서 마적들에 의해 난리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용정(龍井)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알기 위해 돌아왔다가 1922년 7월 12일 영사관경찰(領事館警察)에 체포되었다.
1924년 10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살인, 강도죄 등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경성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35년 7월 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假出獄關係書類
- 每日申報(1922. 7. 19)
- 東亞日報(1922. 7. 24, 1924. 8. 12, 10. 14, 10. 21)
- 朝鮮日報(1924. 10. 14)
- 時代日報(1924. 10. 14)
- 북간도지역 독립군단명부(국가보훈처, 1997) 8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