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평남 평양의 청년회와 백산무사단 제2부 외무원으로 활동하며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음력 12월 김용배(金用培)가 평남 평양에서 독립운동 후원을 목적으로 청년회를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음력 7월 고향인 대동군(大同郡) 용산면(龍山面) 하리(下里)에서 임시정부 특파원 이춘성(李春成)과 함께 대동군 고평면(古平面) 송산리(松山里)에서 박봉욱(朴奉煜)과 홍치룡(洪致龍)으로부터 각각 군자금 150원과 50원을 모집하였다. 군자금 모집 후 9월 27일 중국 임강현 모아산(帽兒山)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 서기로 활동하고 있던 이준삼(李俊三)을 만나 백산무사단에 가입하였다. 백산무사단은 백두산의 무사들을 뜻하는 말로서 본부 아래 제1·제2·제3·제4·제5부를두고, 재무·경호·통신·외무 등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그리고 단원 중에서 전투부대로 독립군을 편성하여 만주와 국내에서 대일 전투를 전개하게 하였다. 이 전투부대 기구를 독판부(督辦府)라 하였다.
1920년 12월 20일 무사단 제2부 외무원으로 임명된 그는 이듬해 2월 27일 이준삼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3월 22일 군자금모집원 사령서와 자동권총 1정, 실탄 25발, 경고문 50매, 군자금 영수증용지 100매, 여비 30원을 지참하고 출발한 그는 이튿날 평북 자성군(慈城郡) 장토면(長土面) 호하리(湖下里)의 신훤(申楦)을 방문하였다. 4월 2일 신훤과 함께 평북 자성군 여연면(閭延面)의 양기조(梁基祚)로부터 군자금 100원을 모집한 뒤, 평양으로 이동하였다. 4월 14일 평양 도착 후 일행 7명과 염점리(鹽店里) 여인숙에 투숙하였으나, 이들의 정보를 입수한 평안남도경찰부와 평양경찰서 경찰들에게 붙잡혔다.
1921년 8월 9일 평양지방법원으로부터 소위 강도·공갈·가택침입·대정8년 제령제7호 위반으로 징역 13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와 경성형무소에서 7년 11월 17일 동안 옥고를 치른 뒤, 1928년 3월 28일 경성형무소에서 가출옥으로 출소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43·95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권 331~333면
- 東亞日報(1921. 6. 7)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2권 995~998면
- 白山武士團員 逮捕의 件(1921. 5. 12)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 判決抄本(平壤地方法院:1921. 8. 15)
- 집행지휘서(平壤地方法院:1921. 8. 11), 假出獄의 건 보고(京城刑務所長:1928. 3. 15), 假出獄執行濟의 건 보고(京城刑務所長:1928. 3. 28) 假出獄關係書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