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북 회령(會寧) 사람이다. 1920년 8월 24일 의군단(義軍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모인화가 활동한 이 단체는 3·1운동 후 북간도(北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통칭 의군부(義軍府)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하였다. 처음 근거지는 왕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였으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왕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다. 의군단의 주요 간부는 본부의 경우 총재 이범윤(李範允),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 김청봉(金淸鳳), 외교부장 신 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며, 중부(中部)의 경우는 참모장 고 평(高平), 서무부장 이 을(李乙), 재무부장 김종헌(金鍾憲), 외교부장 김종환(金鍾煥), 통신부장 박 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감독(軍醫監督) 강문주(姜文周) 등이었다. 이 의군단에서 모인화는 1920년 8월 24일 의군단 단원 최운학(崔雲學)·차정극(車正極)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의논하고, 동년 10월 1일 오후 6시경 만주 화룡현(和龍縣) 사대사(四對社) 서동동(西東洞)에서 동지 이인준(李仁俊)과 함께 밀정 허수여(許守汝)와 이국보(李國輔)를 처단하고 군자금으로 450원과 군수품을 얻었다. 아울러 10월 말경에는 의군단 군무대원 김사극(金士極)·석태준(石泰俊)·고학권(高學權)·허영철(許永哲) 등과 함께 함북 종성군 행영(行營) 부근 마을에서 현금 1백 원 및 7천 원을 기부한다는 계약서를 받는 등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어, 동년 7월 9일 서대문 감옥에서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총독부관보(1921. 7. 2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1076-107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1133-1135면
- 동아일보(1921.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