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8월 의용군 (義勇軍) 에 가입하여 1922년 2월 평북 (平北) 영변 (寧邊) 에서 의용군 (義勇軍) 으로 활동하면서 동지 5명과 함께 일경 (日警) 2명을 사살 하였고 1922년 8월 통의부 (統義府) 에 가입한 후 평북 (平北) 삭주 (朔州) 수풍 (水豊) 용흥 (龍興) 에서 동지 홍학순 (洪學淳) , 한성찬 (韓成贊) , 김상순 (金相淳) , 김병규 (金炳奎)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각자 권총을 휴대하고 일경 (日警) 과 2시간 동안 교전 (交戰) 하였으며 1924년 8월 평북 (平北) 영변 (寧邊) 에 진입하여 영변경찰서 (寧邊警察署) 수사대 (搜査隊) 와 교전 (交戰) 하는 등 4년여의 활동을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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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1922년 2월 평북 영변에서 의용군으로 활동하면서 동지 5명과 함께 일경 2명을 사살하였다.
그 후 명희선은 1922년 8월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의용군에 가담하였다.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의용군의 주요 간부를 보면, 제1대대장 강남도(姜南道), 제1중대장 백광운(白狂雲), 제1소대장 김보국(金保國), 제2소대장 전봉도(全奉道), 제3소대장 김기준(金基準), 제2중대장 최석순(崔碩淳), 제1소대장 김 전(金田), 제2소대장 이규성(李奎星), 제3소대장 신태봉(申泰鳳), 제3중대장 최시흥(崔時興), 제4중대장 홍기주(洪基柱), 제1소대장 장세룡(張世龍), 제2소대장 김국보(金國輔), 제3소대장 신홍영(申洪永) 등이었다.
명희선은 1923년 6월경 통의부 의용군으로서 평북 삭주군(朔州郡) 수풍면(水豊面) 용흥동(龍興洞)에 군자금을 모금하러 갔다가 일경에 발각되어 동지 홍학순(洪學淳)·한성찬(韓成贊)·김상순(金相淳)·김병규(金炳奎) 등과 함께 일경과 2시간 동안 교전하였다. 그리고 1924년 8월에는 평북 연변에서 영변경찰서 수사대와 교전하는 등 무장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276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9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514·5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