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북 길주(吉州) 사람이다.
1920년 음력 2월 만주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마용필이 가담하여 활동한 이 단체는 1919년 11월 북간도의 연길(延吉)·왕청(汪淸)·화룡(和龍)의 대표들이 모여 조직하였다. 본부는 연길현 춘양향(春陽鄕)에 두었다. 주요 간부는 회장 구춘선(具春先), 부회장 서상용(徐相庸), 참사 최노륜(崔老侖)·이봉우(李鳳雨)·한상우(韓相雨)·정병호(鄭秉浩)·김규찬(金奎燦)·김병호(金秉浩)·진석오(陳錫五), 서무부장 김승국(金昇國), 재무부장 유찬희(柳讚熙), 총무·재정검사위원 김윤덕(金允德)·김치도(金致道)·박용극(朴容極) 등을 들 수 있다.
이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4개현에 거주하고 있는 40만 한국인들을 기반으로 하여 조직된 단체로서 그 지회만도 80여 개소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한국민회는 백초구(百草溝)·국자가(局子街)·용정촌(龍井村)·두도구(頭道溝) 등의 상업 지역과 주요 도시 등을 거점으로 삼았다. 아울러 대다수 구성원이 기독교 신자였으므로 기독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 등지에 기본 조직을 갖고 있었다.
마용필은 이 대한국민회에서 모연대장 김영조(金永祚)의 부하로 활동하면서 1920년 음력 2월 동 회원 최연열(崔然烈)과 함께 권총을 휴대하고 독립군 자금을 모집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동월 화룡현(和龍縣) 덕신사(德新社) 남양평(南陽坪)에 있는 음식점 김병락(金丙洛)의 집으로 가서 주민을 소집하고 군자금으로 전야옥(田野玉)에게서 금 100원, 이창호(李昌浩)·김명삼(金明三)으로부터 각 10원, 김형률과 김형준에게서 각 25원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29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10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