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북 길주(吉州) 사람이다.
나승렬은 최영진(崔英鎭)·최인선(崔仁先)·문치룡(文治龍) 등과 함께 1920년 봄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담하였다. 그가 가담하여 활동한 이 단체는 1919년 11월 북간도의 연길(延吉)·왕청(汪淸)·화룡(和龍)의 대표들이 모여 조직하였다. 본부는 연길현 춘양향(春陽鄕)에 두었다. 주요 간부는 회장 구춘선(具春先), 부회장 서상용(徐相庸), 참사 최노륜(崔老侖)·이봉우(李鳳雨)·한상우(韓相雨)·정병호(鄭秉浩)·김규찬(金奎燦)·김병호(金秉浩)·진석오(陳錫五), 서무부장 김승국(金昇國), 재무부장 유찬희(柳讚熙), 총무·재정검사위원 김윤덕(金允德)·김치도(金致道)·박용극(朴容極) 등을 들 수 있다.
이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4개현에 거주하고 있는 40만 한국인들을 기반으로 하여 조직된 단체로서 그 지회만도 80여 개소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한국민회는 백초구(百草溝)·국자가(局子街)·용정촌(龍井村)·두도구(頭道溝) 등의 상업 지역과 주요 도시 등을 거점으로 삼았다. 아울러 대다수 구성원이 기독교 신자였으므로 기독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 등지에 기본 조직을 갖고 있었다.
이 대한국민회에서 나승렬은 경호부장 장성순(張成順)의 부하로 경호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20년 음력 6월 25일 밤에 맹용선(孟龍先)과 함께 대한국민회에서 파견된 임도춘(林道春)의 명령에 따라 북간도 덕신사(德新社) 우동(憂洞)에 거주하는 김순홍(金順弘)이 일본관헌의 밀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를 포살하기 위하여 그 마을로 갔다. 나승렬은 임도춘·맹용선 등이 김운세(金雲世)의 집에서 김순홍을 포박하여 동소(同所)의 동쪽 약 5정 거리 되는 밭으로 납치하여 권총으로 사살할 때, 그 부근을 경계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나승렬은 그 후 1921년 9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살인 및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1921. 7. 13)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0집 1140∼11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