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북 종성(鍾城) 사람이다.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채경옥이 가담하여 활동한 이 단체는 1919년 11월 북간도의 연길(延吉)·왕청(汪淸)·화룡(和龍)의 대표들이 모여 조직하였다. 본부는 연길현 춘양향(春陽鄕)에 두었다. 주요 간부는 회장 구춘선(具春先), 부회장 서상용(徐相庸), 참사 최노륜(崔老侖)·이봉우(李鳳雨)·한상우(韓相雨)·정병호(鄭秉浩)·김규찬(金奎燦)·김병호(金秉浩)·진석오(陳錫五), 서무부장 김승국(金昇國), 재무부장 유찬희(柳讚熙), 총무·재정검사위원 김윤덕(金允德)·김치도(金致道)·박용극(朴容極) 등을 들 수 있다.
채경옥이 참여한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4개현에 거주하고 있는 40만 한국인들을 기반으로 하여 조직된 단체로서 그 지회만도 80여 개소에 이르렀다. 이러한 대한국민회는 백초구(百草溝)·국자가(局子街)·용정촌(龍井村)·두도구(頭道溝) 등의 상업 지역과 주요 도시 등을 주요 거점으로 삼았다. 아울러 대다수 구성원이 기독교 신자였으므로 기독교도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 등지에 기본 조직을 갖고 있었다.
한편 대한국민회에서는 군사활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따로 군사회를 두었는데 주요 간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사령관 안무(安武), 부관 최익룡(崔翊龍), 제1중대장 조권식(曺權植), 제2중대장 임병극(林炳極), 향관 허동규(許東奎), 김석두(金石斗), 군무위원 이원(李園)·마룡하(馬龍河)·최기학(崔起鶴)·마천룡(馬天龍) 등이었다.
채경옥은 1920년 음력 3월말에는 왕청현(汪淸縣) 봉오동(鳳梧洞)에서 최진동(崔振東)이 이끄는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의 간부 중에는 주로 공교회(孔敎會) 신자가 많았으며, 강력하게 국내진입작전을 주장하였다. 주요 간부로는 참모장 박영(朴英), 대대장 이춘승(李春承), 중대장 이동춘(李同春), 소대장 최문인(崔文仁) 등을 들 수 있다. 채경옥은 1920년 4월 동단의 모연대장으로서 함북 종성에 파견되어 일본 밀정을 납치, 해란강(海蘭江) 지역에서 밀정 조태서(趙泰瑞)등 2명을 총살한 후 체포되었다.
채경옥은 1923년 3월 31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사형을 받고, 동년 10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동년 12월 17일 오후 1시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3. 11. 14. 고등법원)
- 조선총독부관보(1923. 12. 25)
- 동아일보(1923. 10. 7, 12. 18)
- 조선일보(1923.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