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일제는 만주지역의 독립운동세력의 저항을 막기 위해 마적(馬賊)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한만국경(韓滿國境) 지대에서 활동하던 마적 장강호(長江好)는 혼춘사건(琿春事件)이 발생하기 전 1920년 음력 5월 2일 길림성(吉林省) 무송(撫松)의 흥업단원(興業團員) 김재호(金在鎬), 송규원(宋桂元) 4인을 임강현(濛江縣) 해청구(海靑溝) 강상(岡上)으로 납치한 후 연일 독형(毒刑)을 가하였다.
전성규가 소속된 흥업단은 길림성(吉林省) 무송현(撫松縣)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로 각 현(縣)에 지단을 설치하고 도만(渡滿)하는 조선 청년들을 모아 백산학교(白山學校)에 보내는 한편,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으는 등의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청산리 전투 이후 장백현(長白縣) 일대에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대진단(大震團), 태극단(太極團), 광복단(光復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과 함께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장강호 마적은 8월 9일에 유하현(柳河縣)에 있는 한족회원(韓族會員) 7명과 함께 임강현(臨江縣) 육도구(六道溝) 압록강(鴨綠江) 상류 삼림 속에서 이들 모두를 살해하였는데, 흥업단원으로 활동하던 전성규는 이때 다른 단원들과 함께 마적단에 의해 피살(被殺)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震壇週報(1920. 11. 28)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1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375~376면
- 朴殷植全書(檀國大 東洋學硏究所, 1975) 上 669~67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