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북 희천(熙川) 사람이다. 천마별영(天摩別營)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9월경 관전현(寬甸縣) 안자구(安子溝)에서는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이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상해 임시정부에 파견되었던 이 탁(李鐸)이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의 간부와 협의하여 임시정부의 독립군영으로서 보다 효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전투군단을 육성할 목적으로 대한청년단연합회와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및 한족회(韓族會)를 통합하여 편성한 것이다. 광복군총영의 사령(司令)에는 대한독립단의 조맹선(趙孟善)을 선임하고, 참모장에 이 탁, 경리부장에 조병준(趙秉準), 본영 영장에 오동진(吳東振)이 취임하고, 모든 영원(營員)은 임시정부의 군인 신분으로 활동하였다. 광복군총영의 조직은 총사령부의 본부인 총영 이외에도 국내외 각 도와 군에 도영(道營)·군영(郡營), 또는 별영(別營)을 두도록 하였는데 별영은 천마별영과 벽파별영(碧波別營)이 대표적인 조직이었다. 천마별영은 원래 최시흥(崔時興)에 의하여 1920년 2월 구한국군인 출신들을 주축으로 평북 의주군(義州郡) 고령삭면(古寧朔面) 천마산에서 조직되었다. 주요 인물로는 사령장 최시흥, 부관 최지풍(崔志豊), 참모 박응백(朴應伯)·박영찬(朴泳燦)·최윤희(崔允熙), 경리 김세진(金世鎭), 중대장 최의집(崔義楫), 소대장 김상옥(金尙玉)·김용택(金龍澤) 등이었다. 활동근거지는 평북 삭주(朔州)·의주·구성(龜城)·창성(昌城) 등지였으며, 주로 광산 등지를 배경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김생려는 1923년 9월 21일 최시흥의 부하로서 동지 16명과 함께 자신의 고향인 평북 희천군 북면(北面) 명문동(明文洞) 창참(倉站)에 가 파출소와 면사무소, 그리고 민가 20여 호에 불을 지르고 순사와 친일 동민들을 사살하였다. 당시 김생려와 함께 활동한 인물로는 조준룡(趙俊龍)·이부도(李富道)·이지선(李芝善)·송영령(宋英玲)·송여덕(宋汝德)·함병병(咸炳倂)·최운기(崔雲基)·이찬지(李燦之)·조창호(趙昌浩)·조삼룡(趙三龍)·장기순(張璣淳)·김봉준(金鳳俊)·맹희준(孟希俊)·박기순(朴基淳)·변창룡(邊昌龍)·이찬기(李燦基)·김윤건(金允建)·한기송(韓基松)·송찬호(宋燦浩)·조성룡(趙聖龍)·함기수(咸基秀)·유승익(劉承益)·김중보(金仲甫)·유승언(劉承彦) 등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으로 김생려는 희천경찰서에 체포되어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김생려는 소위 제령위반 방화살인 등의 죄명으로 징역 5년을 받고, 3년 동안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571·573·584·926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612면
- 동아일보(1927.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