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 이후 조선을 독립시키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같은 해 11월 중국 요녕성(遼寧省) 관전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서 오학수(吳學洙)·지응진(池應晉) 등이 조직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했다.
1920년 6월 지응진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전달하고, 만주로 돌아와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 사령관 이탁(李鐸)으로부터 폭탄과 권총, 폭탄제조용 원료 등을 받아 안동현 이륭양행(怡隆洋行) 내 교통사무국으로 운반하고자 하였다. 이에 백덕현(白德鉉)·최봉린(崔奉獜)과 함께 폭탄과 권총, 폭탄제조용 원료 화물을 안동현으로 함께 운반하였다.
1920년 7월 9일 안동현 교통사무국 연와출장소에서 최봉린·백덕현과 함께 관전현(寬甸縣)의 오동진(吳東振)에게 무기를 옮기던 중, 대한청년단연합회의 무기 운반 사실을 포착한 일본 안동영사관경찰서의 습격을 받아 오학수·지응진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9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내란죄’를 이유로 금고 1년형을 받았다. 이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2년 5월 9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21. 5. 9)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4. 24)
- 조선일보(朝鮮日報)(1921. 4. 24)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1)
- 조선독립운동-민족주의운동편(김정명, 1967) 제2권 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제10집 550~551, 669~67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