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0년 7월부터 중국 북간도(北間島) 소재 대한독립야단(大韓獨立野團) 모험국원(冒險局員)으로 함북 무산(茂山), 평남 용강(龍岡), 황해도 안악(安岳)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대한독립야단은 북만주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1919년에 조직된 무장독립단체로 3ㆍ1운동 직후 청림교도(靑林敎徒)들이 주축이 되어 조직되었다. 청림교는 동학(東學)의 한 교파로 길림(吉林)과 북간도 일대에서 강력한 항일의식을 바탕으로 교세를 확대시켰다. 단장은 청림교주인 신포(申砲), 간부는 임창세(林昌世)ㆍ김광숙(金光淑) 등이었고, 본부는 연길현(延吉縣) 동불사(銅佛寺)에 있었다.
김병칠은 1920년 7월 상순 독립야단에 입단해 모험국원이 되었으며, 국장(局長) 유성근(柳聖根)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위해 국내로 들어왔다. 1921년 2월 8일 평남 용강군 대대면(大代面) 해산리(海山里)와 2월 13일에는 평남 용강군 다미면(多美面) 동전리(東箭里), 2월 19일에는 동군(同郡) 삼화면(三和面) 충흥리(忠興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4월 16일에도 황해도 은율군(殷栗郡) 일도면(一道面) 누리(樓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장연경찰서(長連警察署) 소속의 경찰과 교전을 벌였다. 1921년 5월 19일 용강경찰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2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6월 1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大韓獨立野團員 檢擧의 件(1921. 6. 17)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2)
- 東亞日報(1921. 6. 18, 9. 28, 1929. 6. 19)
- 每日申報(1921. 6. 18, 9. 28)
- 獨立新聞(1921. 10. 14)
- 朝鮮日報(1929.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