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강성리는 1920년 3월 초순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이상룡(李相龍)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들어오려고 하던 이근수(李根洙)를 김동식(金東植)의 소개로 만나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관청을 폭파하고 친일관리들을 살해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그 계획에 따라 이근수가 강성리의 4촌형인 이현수(李賢洙)를 통하여 다이나마이트를 입수하자 이를 제공받았다. 그 후 강성리는 다이나마이트를 갖고 일을 성공시키기에는 이근수와 자신 두 사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서간도로 가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고 있던 정찬도(鄭燦道)·백기환(白基煥)·고창희(高昌熙)·이학근(李學根)·김기욱(金基旭)·최일명(崔日明) 등과 협의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모험단(冒險團)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인 1920년 5월 9일 일경에게 발각되어 동지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나, 강성리만은 몰래 원산(元山)방면으로 피신하였다. 그 후 그는 변성명하고 잡화상을 경영하며 독립운동의 기회를 엿보다 1925년 6월 평양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강성리는 1925년 6월 19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25. 7. 4, 1926. 6. 25, 7. 1)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19∼42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30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9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