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살(射殺) : 활이나 총 따위로 쏘아 죽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중국 길림성 혼춘현(琿春縣) 황구(荒溝)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소속으로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대한군정서는 3.1운동 이전에 만주에서 활동하던 대종교인들이 조직했던 중광단(重光團)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단체로 이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발전하였다. 북로군정서의 군사력은 북간도지역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는데 서대파십리평(西大坡十里坪)으로부터 약 30리의 산림지대에 8개동의 병영을 건립하고 사관연성소(士官鍊成所)를 두었으며, 청산리대첩 직전인 1920년 8월 중순 현재 대원 약 1,200명에 소총 1,200정, 탄약 24만발, 권총 150정, 수류탄 780발 기관총 7문의 무기를 확보하고 있었다. 간부로는 총재 서일(徐一), 부총재 현천묵(玄天默), 총재부 비서장 김성(金星), 사령부 사령관 김좌진(金佐鎭), 사령부 부관 박영희(朴寧熙), 참모장 이장녕(李章寧), 참모부장 나중소(羅仲昭), 재무부장 계화(桂和), 인사국장 정신(鄭信), 경신국장 채규오(蔡奎梧) 등이 활동하였다.
강병관은 1920년 11월 혼춘현 삼구리(三溝里) 북구(北溝)에서 일제관헌의 동정을 관찰했으며, 1921년 음력 12월 신건경찰서주재소(新乾警察官駐在所) 습격을 주도해 일본인 순사 1명을 총살하고 주재소 건물을 파괴하였다.
1922년 11월 혼춘현 반석구(磐石溝)에서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 군자금(軍資金) 모집원(募集員)으로 부하 4명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시도하였으며, 동년 12월 노령(露領) 덕명동(德明洞)에서 군자금 20원을 모집하였다.
강병관은 신건경찰관주재소 습격사건으로 1923년 5월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청진지청(淸津支廳)에서 열린 궐석재판(闕席裁判)에서 사형(死刑)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大正11年中 間島地方 治安情況에 關한 件(間島 總領事:1922. 12. 13)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4)
- 在外 要注意 鮮人 別名 變名 雅號 調査에 關한 件(間島 總領事:1924. 6. 17)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9)
- 國外容疑朝鮮人名簿(朝鮮總督府警務局, 1934) 108면
- 獨立新聞(1923. 6. 13)
- 東亞日報(1923. 6. 2, 6. 23, 8. 31, 11. 15, 12. 21)
- 崔峙能 假出獄關係書類(京城刑務所 : 1940. 1. 5)
- 露支 國境地方 不逞鮮人의 動靜에 關한 件(朝鮮總督府警務局:1922. 12. 14)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34)
- 武裝獨立運動秘史(蔡根植) 96~97면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90~391면
- 韓國獨立史(金承學) 53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권 4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