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5년 음력 8월부터 11월까지 함남 단천군(端川郡)에서 비밀결사 자립단(自立團)을 결성하여 모집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1919년 7월부터 이듬해 9월경까지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과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의 함남교통사무국(咸南交通事務局) 참사(參事)로 활동하다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자립단은 1915년 음력 8월 서간도에서 단천군으로 파견된 최석희(崔錫熙)ㆍ이홍용(李洪容) 등의 지도로 단천군에 거주하는 방주익(方周翼) 등이 주도하여 조직하였다. 자립단은 우선 단천군에서 자금을 모집한 뒤 상업 활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고 그 자금으로 교육 사업을 하여 한국독립을 준비할 목적이었다. 같은 해 음력 9월부터 유창률(劉昌律)ㆍ이임배(李林倍)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그리고 단원은 결사(決死)로 한국 독립을 이룩한다는 맹약서(盟約書)를 작성하여 단원을 확장하고 간부를 선정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6년 3월 14일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받고 공소했지만, 같은 해 4월 17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어 1917년 10월 17일까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7월부터는 대한독립군비단에 가입하여 군자금 및 단원 모집에 힘썼다. 1920년 음력 8월경 조덕윤(趙德潤)의 권유로 대한민국임시정부 함남교통사무국 참사가 되어 함남 일대의 독립운동 연락 사무, 군자금 및 단원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10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함흥형무소(咸興刑務所)에서 옥고를 치르다 1922년 8월 2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16. 4. 17)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21. 7. 20)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控訴事件簿
-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
- 每日申報(1916. 3. 19, 4. 2, 1921. 6. 23)
- 新韓民報(1916.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