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고흥(高興) 사람이다.
당시 광주군 효천면(光州郡 孝泉面)에 거주하면서 숭일학교(崇一學校)의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8일 광주시내의 3·1독립운동은 김복현(金福鉉)의 주도로 추진되어 사전에 독립선언서 수천 매와 경고문 등 백여 매를 인쇄하였다. 그는 이를 숭일학교 생도들로 하여금 배부케 한다는 결정에 따라 학생들의 만세시위 참가를 권유하여 대거 참가케 하였으며, 각종 인쇄물을 시위군중에게 배부케 하면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4. 30 光州地方法院)
- 名籍表(光州監獄 : 1977. 12. 2)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8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59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