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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역(服役) : 징역을 삶.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그후 망명하여 남만에 설립된 대한독립단에 가입, 강계 지역에 있는 일본군의 영림창(營林廠)을 습격하였다. 동년 겨울에는 의용군 제2중대 군의(軍醫)로서 활약하였으며, 1920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북간도 교민호적 조사원으로서 중동선(中東線)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24년 이후에는 참의부의 일원으로서 때로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때로는 단신으로 남북만주에서 또는 국내에 진입하여 영사관·경찰서·파출소 등 적기관 100여개를 습격하여 방화 또는 파괴하는 한편, 일본인 관민 400여명을 살상하는 등 격렬한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1928년에는 참의부와 신민부의 군정파, 정의부의 탈퇴파 등이 혁신의회와 민족유일당 재만책진회를 조직하였는데, 그는 비서로서 의장 김동삼(金東三), 부의장 홍 진(洪震), 군무위원 이청천(李靑天)·김좌진(金佐鎭)·황학수(黃學秀)·박창식(朴昌植)·전성호(全聖鎬), 민사위원 김승학(金承學)·김소하(金 夏)·김동진(金東鎭)·정 신(鄭信)·이관일(李寬一) 등과 함께 활약하였다.
한편 그는 김일산(金一山) 등과 더불어 조선혁명군 대본영을 조직하기도 하였으며, 무장항일투쟁을 계속하다가 1928년 말에 길림(吉林)에서 체포되어 신의주지방법원,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결국 1932년 3월 15일 고등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74·299·452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1면
- 기려수필 351면
- 고등경찰요사 126면
- 동아일보(1927. 8. 23, 1930. 11. 27, 1932. 3. 15)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72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470·5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