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예천(醴泉) 출신이다.
1909년 예천을 중심으로 의거의 기치를 올려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의 휘하에서 의병 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최성천(崔聖天)·한명만(韓明萬)·김상태(金尙台)·정경태(鄭敬泰) 등의 의진과 더불어 소백산 일대에서 일병(日兵)들의 병력 분산 작전을 위한 유격전(遊擊戰)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풍기(豊基)·순흥(順興)·영천(永川)을 중심으로 하여 북으로 산을 넘어 영월(寧越)·제천(堤川)을 연결하는 일선에서 영춘(永春) 동남방, 그리고 순흥·풍기·영천의 삼각지대에서 동으로 봉화(奉化), 남으로 예천과 안동(安東) 3지점을 중심으로 한 일대에서 일병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격전을 거듭하였다.
1909년에서 1910년에 걸쳐 최성천·한명만·김상태(金尙台) 등과 자금조달(資金調達)의 임무를 띄고 동년에 6차례에 걸쳐 일본인 및 친일분자(親日分子)의 집을 색출하여 암살 및 금품을 탈취하는 등 항일 투쟁을 계속하였다.
1911년 1월 12일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소위 살인강도죄로 송치되었으며, 1, 2, 3심에서 모두 사형으로 판결되었다. 그해 2월 28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1. 1. 11) 제34호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3권 814·815면
- 판결문(1911. 2. 4) 제11호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81·6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