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이천(利川) 사람이다. 1907년 7월 20일경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완용(李完用) 등 7적(賊)을 성토하는 격문과 이등박문(伊藤博文) 및 각국 영사에게 보내는 글, 그리고 동포에게 보내는 포고문을 2회에 걸쳐 작성하여 윤평순(尹平順)으로 하여금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에 게재케 하려 했으나 일경에 모두 압수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같은 달 25일경에는 이근풍(李根豊)·주창룡(朱昌龍) 등과 함께 경기도 광주(廣州j)·용인(龍仁) 등지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거의하고 서울 중서전동(中署 洞)에 있는 홍세(洪世永)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모집하려다가 붙잡혔다. 그후 이듬해인 1908년 3월 1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소위 내란죄로 교수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122·12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