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함남 안변(安邊) 사람이다.
1907년 11월 이래로 정기성(鄭基成)·윤학배(尹學培)·조인주(趙仁主)·연기우(延基羽)·강두필(姜斗弼)·채응언(蔡鷹彦) 등과 함께 강원도·함경도·황해도 각지에서 활동하다가 1909년 7월 8일경 군자금모집에 불응하는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방장면(方丈面) 구당리(龜塘里) 소재 김기석(金基錫)의 집 등 11가호를 방화 응징하고 동년 8월 2일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이영면(伊寧面) 추전리(秋田里)의 전기택(全基澤)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10년 4월 28일에는 채응언(蔡應彦) 등 수명과 함께 함남 안변군(安邊郡) 영풍사(永豊社) 마전동(馬轉洞)의 경찰주재소를 습격하여 일인순사 영목청장(鈴木淸昌)을 총살한 후 무기와 탄환 등을 노획하고 동년 6월 14일에도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선암(仙岩)의 헌병분견소를 습격하여 군총(軍銃)·탄환 수십점을 노획한 후 체포되었다.
그후 1911년 5월 29일 경성지방재판소 춘천지부에서 소위 강도·살인 및 방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19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324·32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