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2.3 강원도 (水原道) 영월 (寧越) 에서 유인석 (柳麟錫) 이 의병 (義兵) 대장소 (大將所) 를 설치 (設置) 하고 600여명 (余名) 의 유생 (儒生) 으로 호좌의병진 (湖左義兵陣) 을 편성 (編成) 할 때 입진 (入陣) 하여「사객 (司客) 」의 직책 (職責) 에 임명 (任命) 되었으며 의병진 (義兵陣) 에서는「복수보형 (復讎保刑) 」의 대기 (大期) 를 내걸어 놓고 적측 (敵側) 의 밀정 (密偵) 을 주살 (誅殺) 하는 한편 팔도열읍 (八道列邑) 에 격문 (檄文) 을 발 (發) 하고 청풍 (淸風) 평창 (平昌) 단양 (丹陽) 등지 (地) 에서 전전 (轉戰) 하다가 제천성 (堤川城) 공략 (攻略) 에서 패전 (敗戰) 되어 의병대장 (義兵大將) 유인석 (柳麟錫) 이 진용 (陣容) 을 수습 (收拾) 하여 서북행 (西北行) 할 때 귀가 (歸家) 하여 후일 (後日) 을 기약 (期約) 한 바 을미의병 (乙未義兵) 의 간부 (幹部) 중 1인 (人) 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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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충북 단양(丹陽) 사람이다.
1896년 2월 3일 강원도 영월에서 유인석(柳麟錫)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 참가하여 의병 대장소(義兵大將所)를 설치하고 600여명의 유생으로 진용을 갖출 때 사객(司客)으로 임명되었다.
의진에서는 복수보형(復讐保形)의 큰 깃발을 걸어놓고 밀정 4명을 처단하는 등 활약하였다.
한편 의병진에서는 8도에 격문을 발하고 청풍·평창·안양·원주·풍기·영월 등지에서 왜군과 전투하였으며 제천성 공략에서 패전하여 해진될 때까지 활동하다 후일을 기약하고 은신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194·19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23·183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제9권 370∼375·381∼3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