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충북 괴산(槐山) 사람이다.
일찍이 고향인 괴산 청천(靑川)에서 보통학교 5학년을 다니던 중, 1938년 12월 고학(苦學)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도일(渡日) 초기에는 광도(廣島)에서 직공(職工)·잡역부 등으로 전전하다가, 1940년 5월 하순경 학업을 위해 대판(大阪)으로 옮겨갔다. 대판에서도 직공·우유배달부 등으로 지내면서 1941년 4월 비로소 사립(私立) 관서공학교(關西工學校) 야간부에 입학, 수학하게 되었다.
일본에 건너간 이후 그는 여러 직업에 종사하면서 일인의 한인에 대한 현저한 민족차별의 실상을 체험 목격하고, 한인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민족독립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1940년 7월 20일경부터 계시(堺市) 대판직물주식회사(大阪織物株式會社) 사택에 있으면서 유창규(柳昌珪)·김태원(金泰元) 등 동지 10여명과 함께 한인에 대한 민족차별의 실상을 폭로하고,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일본의 패전이 확실해짐으로 이때를 이용하여 미국·영국·소련의 원조를 얻을 수 있도록 민족의식을 고양하고 독립정신을 배양하는 등의 항일활동을 벌이다가 1942년 4월 23일 일경에게 붙잡혔다.
1942년 9월 16일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 판결문(1942. 9. 16 대판지방재판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륭) 제7권 212∼21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3집 681·69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