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함북 부령(富寧)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전국적으로 비화될 때 청진(淸津)의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서울에서 돌아오던 장채남(張彩南)이 원산(元산山)에 들려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를 소지하고 오자 그를 찾아가 선언서 인쇄를 협의하였다.
이어 3월 24일밤에 이미 인쇄한 천여매의 선언서를 청진부(淸津府) 신암동(新岩洞), 포항동(浦港洞) 일대에 비밀리에 배포하였다. 그리하여 3월 31일과 4월 1일 양일간에 걸쳐 만세시위운동을 거행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소요된 목면제의 태극기 제작 비용 약30원은 그를 비롯한 거사 중심인물들이 갹출한 성금으로 충당하였다.
그 뒤 1920년 3월경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한 이래 동회의 남지방회(南地方會)에 소속되어 화룡현(和龍縣) 사백사(四白社) 및 합화사(合化社) 지방을 근거로 하는 경호대원(警護隊員) 겸 모연대원(募捐隊員)으로 활동하면서 두만강 대안의 칠도구(七道溝) 서작동(西作洞)과 회령(會령寧)·무산(茂山)·부령·청진 등 함경도 일대를 전전하며 군인 소모와 군자금 수집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군자금 2천여원과 러시아 화폐 3천 루블을 모금하였으며, 칠도구 사백사 등지에 수 개의 국민회 지회를 설치하는 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1년 1월 30일 동지 4명과 함께 회령에서 붙잡힌 뒤 같은 해 11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등으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다가 징역 11년 3월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民族運動史料(中國篇)(國會圖書館) 826·827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31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742·743面
- 韓國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第2卷 795·796面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1卷 分冊 532·533面
- 3·1運動實錄(李龍洛) 97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965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