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진주(晋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초순 서울 탑동 공원에서의 독립만세시위를 계기로 전국적으로 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끊임없이 확산되자 3월 18일 진주군 진주읍(晋州邑)에서도 장날에 만세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강달영(姜達永)·심두섭(沈斗燮)·이강우(李康雨)·박진환(朴進煥) 등과 함께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는 동료들과 조선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 교유문(敎喩文) 등 2,000여 매를 인쇄하고 태극기를 만든 후 거사일 장터에 모인 군중들에게 배부하면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와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장터를 누비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일경의 무력탄압으로 시위는 중단되고 붙잡혔다.
그해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과 9월 6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6. 17 大邱覆審法院)
- 判決文(1919. 9. 6 高等法院)
- 3·1運動實錄(李龍洛) 651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