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북 문경(聞慶) 사람이다.
의병장 이강년(李康秊)의 종제(從弟)로 1896년 1월 경북 문경에서 종형 이강년이 거의하여 항일투쟁을 시작할 때, 병장기와 총검으로 무장하여 기병 출전하였다.
이 의진은 지방의 탐관오리로서 일제에 동조하던 안동관찰사 김석중을 생포하여 농암시장(籠岩市場)에서 목을 잘라 효수하기도 하였다.
군자금에 어려움이 많았던 이강년 의진에서 그는 비교적 부유하였던 자신의 전 재산과 전답을 정리하여 군수자금을 삼고 소모장(召募將)이 되어 종군하였다.
이 부대의 주요 활약지역은 심산의 험로 조령(鳥嶺)과 갈평이었다.
단발령으로 전국의 유생들이 거병하자 이강년과 그는 1896년 1월 29일 제천에 있던 유인석을 찾아가 사제(師弟)의 의를 맺고, 그 아래에서 유격장(遊擊將)과 우군장(右軍將)으로 맹활약하였다.
이강년·이강수 두 의병장은 수안보와 조령 일대에서 왜적과 대항하며 활약하였으나 적에 비해 장비의 열세를 면치 못하여 후일을 기약하며 일단 의병을 해산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다시 거의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문경, 제천, 단양, 강원, 재령, 원주 일대에서 왜적토멸에 진력하였다.
이강수 부대는 특히 1907년 7월 벌어진 제천 전투에서 수많은 왜적을 섬멸하기도 하였다.
이 같이 그는 가산과 가족을 돌보지 않고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운강선생창의일록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212·284·690·7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