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 8월 경 박윤성 (朴允成) 등과 함께 독서회 (讀書會) 를 통한 사회주의 선전으로 체포되어 불기소로 석방되었으며 1927-1931년 신간회 (新幹會) 당진지회 (唐津支會) 간사, 대표위원, 상무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1929. 6월 신간회 복대표대회에서 중앙검사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30. 1월 경에는 광주학생사건에 동조하여 학생시위를 계획하고 석문공립보통학교 (石門公立普通學校) 에 격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에 연루, 체포되어 약 11월의 옥고 를 치른 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1932. 2월 경에는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 (朝鮮共産黨再建協義會) 사건으로 체포된 후 병보석으로 출감되어 치료를 받아오다 4개월 후 사망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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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24년 8월경 충남 당진(唐津)에서 박윤성(朴允成) 등과 함께 비밀결사체인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사회주의사상과 항일의식을 고취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1927년 신간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신간회 당진지회 설립에 적극 참가하여 1931년 해소될 때까지 동지의 간사·대표위원·상무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9년 6월에는 신간회 중앙검사위원으로 선출되어 중앙에서도 활동하였다. 그리고 1929년 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를 지원하는 학생시위를 촉발하기 위해 1930년 1월 당진에서 석문공립보통학교(石門公立普通學校)에 격문을 배포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이 일로 체포되어 약 11개월 동안 고초를 치렀다. 이후에도 항일투쟁을 벌이다가 1932년 2월 일경에 다시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병보석으로 출옥했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4개월 후 사망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日報(1927. 11. 9·12. 10·12. 11, 1928. 2. 3, 1929. 1. 29·8. 16, 1931. 1. 26)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647·64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549∼1551면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光州學生獨立運動史(光州學生獨立運動同志會, 1974) 192∼194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400면
- 東亞日報(1924. 9. 3, 1930. 1. 4, 1931. 7. 2, 1932. 3. 1·9. 18, 1933. 1. 31)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7권 145면
- 韓國共産主義運動史(金俊燁·金昌順, 1986) 제3권 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