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중국 상해(上海)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경상도 의원으로 1919년 9월 17일 보선되어 임시정부의 국사처리를 위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6월 상해에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가 소집될 때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상해파의 일원으로 윤해(尹海)·신숙(申肅) 등이 주동이 된 창조파(創造派)에 속하여 활동하였으나 조선공화국(朝鮮共和國) 건국을 결정하고 임시헌법, 국호 등을 제정하자 뜻을 바꾸어 이러한 일은 전민족의 의사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편 공산당 대표로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계파간의 이견조정에 힘쓰는 민족우선의 독립운동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이듬해인 1924년 6월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오는 국내 학생들이 언어와 풍속에 익숙하지 못하여 중국 사회에 적응치 못하고 상급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는 실정에 놓이게 됨을 타개하고자 김규식(金奎植)의 제안으로 인성학교(仁成學校)내에 예비강습소를 개설하였을 때 김규식(金奎植)·여운형(呂運亨)과 함께 영어과목을 담당하여 교수하였다.
그후 상해고등보통학교(上海高等普通學校)로 개편되자 여운형·김종상(金鍾商)과 함께 전임교사로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동년 11월에는 상해에서 윤자영(尹滋英)이 조직한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에 가입,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1925년 9월 8일 중국 상해교민단의사원(上海僑民團議事員)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9년 10월 10일 중국사정연구회(中國事情硏究會)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에 선출되었으며 동년 11월 상해에서 의열단(義烈團) 창립 제9주년을 맞이하여 재중국국민에게 격문을 발표하면서 성대한 기념식을 가졌다.
1927년 4월 11일 상해에서 독립전선의 역량을 총집결하기 위하여 한국유일독립당(韓國唯一獨立黨) 상해촉성회(上海促成會)를 조직하여 집행위원이 되고 동년 10월에는 상해에서 한국독립당 관내촉성회연합회(韓國獨立黨關內促成會聯合會)를 조직할 때 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1928년 봄 상해 프랑스 조계 패륵로(貝勒路) 항경리(恒慶里)에서 상해 일본 총영사관 경찰에게 붙잡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동년 12월 12일 소위 치안유지법,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2년 6월 10일 만기출옥 하였으나 출옥후 6개월 20일만인 1932년 12월 30일 옥고의 여독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향년 45세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사상정세시찰보고집(제1집) 242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78·179·191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90·91·102·105·107·139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276·889·923면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44·245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59·208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54·305·308·309·536·543·544·619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31·132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307·315·320·32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52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17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2집 121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1043-104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586·592·593·596·913면
- 동아일보(1924. 6. 4, 6. 6, 9. 7, 11. 5, 1926. 10. 20, 1928. 8. 7, 8. 29, 11. 13, 1933. 1. 1, 1991.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