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충북 옥천(沃川) 사람이다.
1922년 서울로 상경하여 만국성서연구회에서 성서보급 업무에 종사하며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영어를 배우며 생활하고 있던 중, 1925년 당시 중국 상해(上海)로 망명하여 그곳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원으로 있던 친형 곽중규(郭重奎)의 부름에 따라 상해로 건너갔다.
상해(上海)에 도착한 후 1926년 1월 1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전위(前衛)적 단체인 비밀결사 병인의용대(丙寅義勇隊)에 가입하였다. 병인의용대는 정위단(正衛團) 간부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절대 옹호하는 것을 표방하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의용청년을 규합하였다. 이 열혈청년당원을 상해 일본총영사관(上海日本總領事館)에 두 차례에 걸쳐 폭탄을 투척한 것을 비롯하여, 친일선인(親日鮮人)을 주살(誅殺)하면서 적기관시설(敵機關施設)을 파괴하는 행동대원으로서 활동하였다. 1927년 황포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에 입학하였다가 이듬해 학교내에서 소요가 일어나자 자진 퇴교한 뒤, 1929년 상해의 영국전차회사에서 근무하였다.
한편 형 곽중규의 지시에 따라 윤봉길(尹奉吉)에게 상해의 지리와 풍습 등을 안내하며 편의를 제공하였다. 친형 곽중규가 신의주형무소(新義州刑務所)에서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천진(天津)에 은신 중이어서 비밀연락을 취하며 상해에 있는 형의 가족을 돌보고 있던 중, 1935년 9월 20일 상해 남경로에서 일제의 밀정으로부터 권총 저격을 받아 복부 관통의 총상을 입고 향년 28세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104·105면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301·3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