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7. 5 충북 (忠北) 제천 (堤川) 에서 이강년 의병대장 (李康秊義兵大將) 이 재거의 (再擧義) 하자 의진 (義陣) 에 참진 (參陣) 하여 좌종사 (坐從事) 로 임명 (任命) 되어 조령 (鳥嶺) 수안보 (水安堡) 제천 (堤川) 영월 (寧越) 청풍 (淸風) 문경 (聞慶) 등지 (地) 를 전전 (轉戰) 종사 (從事) 하면서 왜군 (倭軍) 과 싸워 크게 전공 (戰功) 을 세우다가 1908. 6. 4 까치성 (城) (작성 (鵲城) )에서 이강년 의병대장 (李康秊義兵大將) 이 부상 (負傷) 을 당 (當) 하여 왜군 (倭軍) 에게 피체 (被逮) 됨으로 의진 (義陣) 의 사기 (士氣) 가 쇠퇴 (衰退) 하여 해병 (解兵) 될때까지 활동 (活動)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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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북 문경(聞慶) 사람이다.
1907년 7월 일제의 국권침탈이 더욱 심화되어가자 충북 제천(堤川)에서 재차 거의(擧義)한 이강년 의병진(李康秊 義兵陣)에 입진(入陣)하여 좌종사(坐從事)로 임명되어 조령(鳥嶺)·수안보(水安堡)·제천(堤川)·문경(聞慶) 등지를 종군하면서 왜군과 싸워 크게 전공(戰功)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8년 까치성 전투에서 이강년 의병대장이 중상을 입고 왜군에게 붙잡혀 의진이 무너졌는데, 이때 산중으로 피신하여 후일을 기약하고 의병동지간에 연락을 취하면서 복수의 뜻을 세웠으나, 뜻대로 되지 못함을 한탄하고 은둔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544·54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303·730면
- 도창의대장 운강 이강년선생 약사(기념사업회) 16면
- 문경군지(증보판) 후381면
- 문경대관(문경문화원, 1985) 102면
- 향사항일의병사(문경문화사) 149·536면